History of Challenge
글쓰시고 싶으신 분 아무 분이나 남기세요.그런데, 너무 무미건조할까봐 미리부터 걱정되네요. ^^*
지나친 법치주의의 병폐
2016-11-05
See : 317
Reply : 0
Write Reply
달바라기
History
일기 작성시 태그를 입력하시면
이곳에 태그가 표시됩니다.
일기장 설정에서 숨길 수 있습니다.
이곳에 태그가 표시됩니다.
일기장 설정에서 숨길 수 있습니다.
위앙(衛鞅)은 법가(法家)로써 법치주의를 강력히 주장하였는데, 마침내 진(秦)나라의 효공(孝公)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위앙의 주장에 의하면 백성들이란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일일이 그 의견을 다 들을 수가 없고, 성공한 다음에 그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위앙은 연좌법(連坐法)을 시행하기로 하였는데, 그 법의 내용은 실로 삼엄하였다.
위앙은 법령을 만들어서 반포하기 전에 백성들이 이 법을 믿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세 길쯤 되는 나무 하나를 서울 남문에 세우고 이것을 북문으로 가져다 옮기는 사람에게 10금을 준다고 방을 내걸었다. 백성들은 괴이하게 여겨서 감히 옮기지를 못했다. 그러자 위앙은 그 상금을 올려 50금을 주겠다고 선언하였다. 마침내 한 사람이 나무를 옮겼다. 위앙은 그에게 약속대로 상을 내린 다음에 새로 정한 법을 공포하였다.
법을 시행한 지 1년, 새 법이 불편하다고 항의하는 자가 실로 수천이나 되었다. 이때 태자가 법을 어긴 일이 발생하였다. 위앙이 말하였다.
"법이 이토록 잘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법을 범하기 때문이다. 태자는 임금의 뒤를 이을 분이므로 형벌을 시행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고나서 위앙은 태자의 스승인 공자건(公子虔)과 공손가(公孫賈) 두 사람을 벌했다. 그러자 비로소 진나라 사람들이 법을 따르게 되었다.
법을 시행한 지 10년이 되자 진나라에는 길에 떨어진 물건을 집는 사람이 없었고, 산에는 도둑이 없었으며, 백성들이 나라를 위하는 싸움에는 용감해도 사사로운 싸움은 겁내어 크게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뒤, 이번에는 새 법이 좋다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위앙은 그 또한 법을 어지럽히는 백성이라고 선언하고 그를 변방으로 쫓아내었다. 그후에는 아무도 법령에 대해 의논하는 자가 없었다. 훗날에 이르러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것은 실로 위앙의 법치주의가 이룩한 힘이 근원이 되었다.
그러나, 위앙의 법은 숨쉴 틈도 없이 가혹하여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위앙은 마침내 권력을 잃고 도망을 치게 되었다. 그가 한밤중에 여관에 가 문을 두드리며 자고 갈 것을 청하자 여관 주인이 말했다.
"법에 여행권이 없는 자를 유숙시키면 처벌을 받습니다."
위앙이 탄식했다.
"아, 법의 폐해가 내게 이르렀구나!"
- <사기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