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 会員登録
달바라기
글쓰시고 싶으신 분 아무 분이나 남기세요.그런데, 너무 무미건조할까봐 미리부터 걱정되네요. ^^*
관중을 알아준 포숙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본래 같은 고향 출신으로서 우정이 두터운 사이였다.  둘 다 제(齊)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했는데,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포숙은 공자 소백(小白)을 섬겼다.  
당시 제나라에는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이 많았다.  왕은 후궁들이 난 여러 왕자들을 태자처럼 대우하였다.  그래서 왕이 죽은 다음에는 그 많은 왕자들간에 임금 자리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 예상되었다.  그래서 공자 규는 노(魯)나라로 달아났고, 공자 소백은 거로 달아났는데, 관중과 포숙은 각각 자기 주인을 따라갔다. 
과연 얼마 안 있어 공손무지(公孫無知)라는 신하가 난을 일으켜 임금 양공(襄公)을 죽였다.  그러나 공손무지도 난리통에 피살되었다.  이리하여 제나라는 임금 없는 나라가 되었다.  이에, 공자 규와 소백은 재빨리 왕이 되기 위해 움직였다.  
공자 규를 모시고 있던 관중은 자기의 주인을 위하여 노나라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로 돌아오다가 아무래도 공자 소백이 경쟁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소백이 귀국하는 길에 복병을 두어 소백을 처치하기로 하였다.  관중은 자기의 화살로 소백을 겨누어 쏘았다.  화살은 소백을 맞혔다.  그렇지만 소백으로서는 다행하게 화살이 혁대 고리를 맞혔기 때문에 몸을 다치지 않고 무사히 귀국할 수가 있었다.  이 때문에 소백은 관중에 대하여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제나라에 돌아온 소백과, 규를 대신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온 관중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싸움의 승리자는 소백이었다.  소백은 임금이 되었고, 임금이 되자 제에 비해 약소국이었던 노나라를 위협하여 아직 노나라에 남아 있는 형인 규를 제거하게끔 하였다.  
한편, 규를 받들어 소백과 전투를 했던 관중도 체포되어 노나라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소백은 이전의 원한도 있고 하여 관중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때 소백을 도와 그가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포숙이 나서서 권했다.  
"관중은 비범한 인재입니다."
왕이 말했다.
"그는 나의 원수요.  내 그를 죽이고자 하오."
포숙이 말했다.
"아닙니다.  어진 임금에게는 사사로운 원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관중이 제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 것이 주공께는 원수가 된 것 뿐인데, 제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 그이고 보면 주공께도 충성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주공께서 지금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그 곁에 제가 있으면 족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한번 큰 뜻을 내시어 천하를 제패하고자 하신다면 저로서는 부족합니다.  그때에는 관중 같은 인물이 아니고서는 실로 일을 도모하기가 어려우실 것입니다."
새 임금 환공(桓公)은 포숙의 말을 옳게 여겨 노나라에 갇혀 있는 관중을 불러들여 돌아오게 하였다.  포숙은 교외까지 나가서 관중을 맞이하여 묶인 밧줄을 풀게 하고 함께 제나라로 돌아왔다.
환공은 관중을 극진한 예로써 대우하였고, 그를 높여 왕족보다 더 높은 지위를 주었다.  포숙은 자진해서 관중의 아래에 있고자 하였고, 환공은 모든 정사를 관중에게 맡겼다.  환공은 관중을 "중부(仲父)"라고 불렀는데, 이는 관중을 아버지처럼 여긴다는 뜻이었다.  이리하여 환공은 관중의 정책을 받아들여 마침내 첫번째 춘추오패(春秋五覇)가 되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다.  
어느 때 관중은 자기의 친구인 포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젊어서 곤궁하던 때에 나는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언제나 이익을 더 많이 차지했다.  그렇지만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그는 집이 가난하니까"라고 말하였다.  또, 어떤 때는 포숙과 함께 무슨 일을 꾸미다가 실패하여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고,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일이란 때로 이로울 때가 있고, 불리할 때도 있는 법"이라고 말하여 나를 위로해 주었다.  또한, 나는 세 번 세상에 나가 벼슬을 했으나 세 번 다 임금에게 내쫓김을 당했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못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한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전쟁에 나가서 세 번 싸워 세 번 다 패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 하지 않고,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탓"이라고 하였다.  얼마 전에는 내가 모시던 공자 규가 죽고 나는 감금되어 욕을 보고 있었으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그는 조그만 절개를 지키지 못하는 데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나, 좋은 이름이 천하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아,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거니와, 나를 알아준 이는 실로 포숙이었다!"
                                                                                                                    - 

回答登録

アーカイブ

Kishe.com日記帳
  • ダイアリ一覧
  • 맞이꽃 610
    ダイアリー コミュニティトップ 自分の情報